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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30일

탕트 레오니의 집을 위한 새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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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트 레오니의 집 - 마르셀 프루스트 박물관 소장품이 최근 경매(Wattebled Portay 경매소)에서 구입한, 앙리 프랑수아 알렉상드르 반 블라랑베르그(1819-1906)를 그린 폴 베녜르의 이 파스텔화로 더욱 풍부해졌다.

이 취득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

폴 베녜르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벗이었으며, 저희는 이미 그의 작품(레만 호수의 풍경화) 한 점을 소장하고 있다.

반 블라랑베르그 씨는 프루스트의 텍스트 «Sentiments filiaux d'un parricide»(어느 존속살해자의 효심, 1907)의 첫 문장부터 언급된다. 이 글은 미망인 블라랑베르그가 아들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다룬 것이다(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 « Quand M. van Blarenberghe mourut, il y a quelques mois, je me souviens que ma mère avait beaucoup connu sa femme »(몇 달 전 반 블라랑베르그 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어머니가 그의 아내와 깊은 친분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프루스트는 또한 다니엘 알레비에게 보낸 긴 편지에서도 반 블라랑베르그를 언급한다 : "Quant à M. Van Blarenberghe le père, Maman l'estimait beaucoup et lui était charmant pour nous, quand nous faisions de ces voyages que ma santé rendait compliqués pour moi et si tristes pour maman. Je me rappelle le calvaire de notre voyage à Venise, et à chaque station où Maman voulait que je puisse déposer ma croix, avoir un wagon vide, y faire une fumigation antiasthmatique, elle exhibait une longue lettre que nous avait remise M. Van Blarenberghe (il était président du Conseil d'Administration de l'Est je crois) et dont se moquaient les chefs de gare italiens. [...] M. Van Blarenberghe était bien un peu réactionnaire pour maman qui était le plus grand et tendre cœur que je puisse même imaginer. Il était un peu du genre des gens dont elle disait : "il n'aime pas ce qui peut faire baisser les loyers et les actions de chemin de fer". Mais depuis la mort de mon grand-père, elle avait avec une sorte de fétichisme adopté, transformé en objets de culte, en ustensiles de commémoration et de cérémonie, ce que de son vivant elle trouvait peut-être un peu exagéré chez lui ; or mon grand-père, bon, tendre, comme elle, que j'ai vu passer des semaines sans s'endormir parce qu'il avait vu dans la rue un homme frapper un enfant, et qui même malade et presqu'infirme faisait arrêter son fiacre à deux rues de chez lui pour ne pas risquer d'ennuyer son concierge par la vue d'un luxe qu'il ne pouvait pas s'offrir, mon grand-père croyait que le bien du peuple ne pouvait être obtenu que sous un régime autoritaire (bien relativement) et d'ailleurs anticlérical (encore plus relativement ; Louis-Philippe envoyait ses fils au lycée)."(아버지 쪽 반 블라랑베르그 씨로 말하자면, 어머니는 그를 무척 존경하셨고, 제 건강 때문에 여정이 복잡해지고 어머니께는 몹시도 서글펐던 그런 여행을 함께할 때면 그는 저희에게 참으로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베네치아로 갔던 그 고행 같은 여정이 기억납니다. 어머니께서 제가 제 십자가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즉 빈 객차를 얻어 그 안에서 천식 훈증을 할 수 있도록 매 정거장마다 애쓰실 때면, 어머니는 반 블라랑베르그 씨가(제 기억으로는 동부철도 이사회 의장이었던) 저희에게 건네준 장문의 편지를 꺼내 보이곤 하셨고, 이탈리아 역장들은 그것을 보며 비웃곤 했습니다. […] 반 블라랑베르그 씨는,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크고 다정한 마음을 지니셨던 어머니께는 다소 반동적으로 보이는 분이셨습니다. 그는 어머니께서 "임대료와 철도 주식이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라 부르시던 그런 유형에 조금은 속하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어머니는 살아 계실 적에는 다소 지나치다 여기셨을지도 모를 그분의 면모를 일종의 물신처럼 받아들여, 추모와 의식을 위한 성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제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처럼 선하고 다정한 분으로, 거리에서 한 남자가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본 뒤로 몇 주 동안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시는 모습을 뵌 적이 있으며, 병들어 거의 몸이 불편하실 때조차 자신이 누릴 수 없는 사치를 문지기가 보게 될까 염려하여 삯마차를 집에서 두 거리 떨어진 곳에 세우게 하셨던 분인데, 그런 외할아버지께서는 백성의 안녕이란 (상대적으로나마) 권위적이면서 (더욱 상대적으로나마) 반교권적인 체제 아래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믿으셨습니다(루이필리프는 자신의 아들들을 리세에 보냈지요).)

이 작품은 조만간 탕트 레오니의 집에 전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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